오른쪽 우송고등학교 1학년 이소연 학생 (사진제공=대전봉사체험교실)
전 세계를 뒤흔든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중학교를 입학했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그 전에 의무적으로 채워야 했던 외부 봉사 활동이 없어져 교내 봉사 활동에만 참여했다. 또한 대학 입시에 봉사 활동이 반영되지 않기에 나에게 봉사란 남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러나 여름 방학을 맞이해 어머니의 권유로 대전봉사체험교실에서 운영하는 연탄 나눔 봉사에 참여하게 됐고 8‧15 광복절을 앞두었기에 다음날 현충원 참배도 하기로 했다.
햇볕이 너무나도 뜨겁다 못해 따가운 오후 3시, 차에서 내리자마자 내가 여기에 왜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서해 수호 55 용사의 흉상 앞에 서니 마음이 숙연해졌다.
지난 2002년 6월 29일 한일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였을 때 제2 연평 해전이 일어났고, 대한민국의 소중한 군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나라를 위해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바치신 국가유공자분들 앞에서 더위에 지쳐 나약한 생각을 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권흥주 대전봉사체험교실 회장님께서 호국선열과 애국지사의 차이점을 설명해 주셨고, 이제는 통합해 국가유공자로 명명한다고 친절히 알려주셨다. 회장님께서 군인 시절 고생하셨던 일화도 말씀해 주셨는데,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회장님께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다.
자리를 옮겨 김구 선생님의 어머니이신 곽낙원 애국지사와 김구 선생님의 장남이신 김인 애국지사의 묘소를 참배했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김구 선생님뿐 아니라, 온 가족이 독립운동을 하셨으니 참으로 대단한 가문이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주인공이셨던 독립운동가 황기환 묘소도 참배했는데, 나라를 지키다 홀로 쓸쓸히 돌아가셔서 유족이 한 분도 안 계셨다.
얼마 전 폭우로 인한 구조작업 중에 돌아가신 해병대 채수근 상병의 묘 앞에서는 눈물이 앞을 가렸다. 채 상병의 지인분들이 참배하고 계셨기에 기다렸다가 참배했다. 채 상병의 사진과 지인들의 편지를 보니 마음이 숙연해졌다. 우리 오빠가 곧 병역판정 검사를 받아야 하기에 더더욱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머니께서는 학창 시절에 현충원을 소풍으로 여러 차례 방문했기에 자연스레 애국의 마음을 키울 수 있었다고 하셨다. 개인적으로 방문하기는 쉽지 않으니 학교 체험학습으로 현충원을 방문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전에 오래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방문한 대전 현충원은 매우 넓었고,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웠다. 이렇게 수많은 국가유공자의 피와 땀이 있었기에 우리가 자유를 누리며 대한민국에 살 수 있는 것이다.
‘Freedom is not free’라는 명언을 체감할 수 있었다. 현충원을 매주 방문해 참배하는 대전봉사체험교실 회원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대한민국에 도움이 되는 인재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했다.